후기방
내용
[초산/ 남아/ 3.2킬로/ 51센티/ 역아]
안녕하세요~ 씩씩한 남자아기를 키우고 있는 말똥이엄마입니다.
벌써 다음 달이면 우리 아기가 백일을 맞이하네요...정신없이 아기가 커가는 모습 지켜보느라 시간이 어찌 흐르는 지도 모르고 지냅니다. 원장선생님! 그리고 신생아실, 조리원 식구들 다들 안녕하신지요. 말똥이는 무럭무럭 잘 크고 있답니다!
첫애라 그런지 육아하면서 매 순간마다 아기가 보여주는 모든 게 신기하고 낯설기만 해요.
낳기만 했놧지 아직 초보 엄마라 아기를 케어해주는 것도 어설프기만 하고, 그래서 제 아가에게 미안하고 고맙고 그러면서 지낸답니다. 감사하게도 친정엄마가 저와 아가를 위해 산후조리를 100일동안 해주시고 계세요~ 할머니가 계셔서 똥이가 그나마 편하게 탈없이 자라고 있습니다. 당신의 자식뿐만 아니라 그 자식의 자식까지 돌보아야 하는 제 엄마에게도 미안하고 고맙고, 새끼를 낳아 보니 엄마한테 더 애틋한 마음도 생기고 그러네요.
제 아기 말똥이는 역아인 채로, 발가락부터 나와 세상구경을 했어요.
역아...신랑과 저는 출산을 완전히 마친 뒤에야 부모님들께 연락을 드렸어요, 역아를 자연출산으로 낳는데 아무래도 걱정을 많이 하실 것 같았거든요. 아기 낳고 조리원으로 올라와서 통화를 하는 데 엄마가 우시는거예요. 오늘도 그 때 이야기하면서 또 울먹이시더라구요... 막달에, 제가 자고 있으면 항상 방에 오셔서 안색을 살피고 그러셨대요. 출산을 앞둔 예비엄마 낯색이 기대에 찬 게 아닌 근심 가득이었다고, 그래서 그 모습 보면서 마음이 아프셨다고.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저도 자식이 생기니 정말 그 마음 천번만번 헤아려지는 거죠.
35주 쯤, 조산원 방문 전날에 산부인과 진료를 했는데 세상에 말똥이가 거꾸로 앉아 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죠.
완전 멘붕...청천 병력...7~8개월에 진료를 두 번 빠졌는데 병원 안가고 뺀질대던 게 급 후회가 되는 순간이었어요.
우리 말똥이는 머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엉덩이가 있었는데 선생님이 아기만 키우지 않는다면 출산이 가능하다고 하셨어요.
초산이 역아일 경우 아기가 작으면 엉덩이부터 나온다고 하더라구요. 물론 특수한(?) 상황이기는 하죠.
역아라면 보통은 수술을 하는 게 당연한 분위기이고 확실히 위험하기는 하니까요. 저도 물론 제왕절개를 고려해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진통하면서도 수술할까 말까 갈팡질팡 하기도 했구요. 게다가 우리 아기는 탯줄이 먼저 나올 위험성이 있었어요.
아무튼 역아라는 걸 아는 채로 저와 거꾸로아기 말똥이와 원장선생님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어요. 그 때 아가 체중이 2.2킬로그람이었고 엉덩이가 밑으로 있는 상태였죠.
역아를 칼대지 않고 낳으려다 보니 다른 예비엄마들 보다 몇 배는 더 노력해야 했어요.
아기가 체중이 늘면 안돼서 식이 조절하고 예정일보다 빨리 나와줘야 해서 걷기운동 그야말로 빡시게(!) 하고 심지어 엄마랑 이삼일에 한번씩 동네 산도 타고 그랬어요. 원장님이 종종 전화해서 상태를 체크하셨지만 가진통만 간간히 느낄 뿐 아기가 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어요. 저는 초조해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이 모든 순간에 말똥이와 나는 함께하는 거니까 엄마인 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절대 안된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모든 것을 아기와 나눴어요. 이야기를 하면서요... 말똥아 엄마랑 명상하자, 엄마랑 산에 다녀오자, 엄마랑 희망을 갖자.
말똥이는 무사히 잘 나올거고 혹시 또 모르지, 기적적으로 휙~ 돌아 머리부터 나올지도 모르는 거고 그렇지 못해서 그냥 거꾸로 나와도 아무 탈없이 세상빛 볼 수 있을거니 아무 걱정 말아라... 엄마랑 같이 노력하자.
엄마도 두렵지만 말똥이는 더 무섭고 떨릴테니 엄마가 용감해질게, 엄마만 믿고 나와라... 음악 틀어놓고 침대에 누워서 하루에 몇번이고 이야기해주었어요. 아기한테도 저한테도. 마치 주문외듯이.
출산하는 장면을 하루에도 수십번 그렸어요. 아기가 나오는데 원장님이 '어! 머리가 보이네요~ 이제 다 나왔어요~ 후~~~ 응애응애 아~ 시원하다... 아플까봐 무서웠는데, 고통스럽긴 커녕 오히려 뭔가 쑥 빠져서 후련하다~'
양수가 부족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물을 많이 마셨어요. 원래도 많이 먹기도 했는데 하루에 2리터 넘게 마시니까 나중에는 물만 먹으면 얹히듯이 명치가 꿀렁거리며 아프더라구요. 아 왠지 제가 엄첨 미련맞아 보이네요...^^;;;
어쨌든 그렇게 하루하루 버텨(!)가면서 3월 26일 원장님과 통화를 했어요. 그 때가 38주 3일 정도 됐을 때죠. '원장님 아기가 아직 나올 준비가 안됐나봐요~ 가진통도 어째 미적지근한 것 같고.
아기가 2.9였는데 지금 3은 넘었을 텐데... 자궁 경부는 많이 부드러워졌는데...
산모님 그럼 아빠주사를 맞아봐요. 진통을 촉진하는데 그 방법이 정말 좋아요~'
아빠주사라는 건 합궁을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 뭐든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27일, 왠지 그 날은 운동도 하기 싫고 샤워도 뜨거운 김 팍팍 쐬며 오래오래하고 하루종일 잠만 잤어요. 신랑이랑 종일 뒹굴뒹굴 게으름만 피우며 하루를 다 보내고, 밤에 잠들기 전 합궁요법을(^^;;) 감행했죠.
얼마쯤 잤으려나, 자다가 배가 사르르 아파서 깼어요. 전 그것도 가진통인 줄 알았어요. 진진통이오면 처음부터 엄청 아플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퍽! 하면서 순간적으로 팬티가 다 젖는게 느껴지질래 아 이제 진진통이 시작됐구나~했지요.
신랑을 깨웠어요. 파수가 된 것 같다고. 원장님께도 전화를 드렸어요. 그때가 자정무렵이죠, 하지만 파수 전에 저 혼자 한 삼십분 진통 느꼈으니 시간은 11시 30분부터 계산할게요.
원장님이 진통 간격을 체크하라고 하셨어요. 5분, 6분,4분 간격으로 진통이 오더라구요.
진통간격이 뭐지? 어떻게 오는 거지? 하고 저도 처음에는 몰랐어요. 아파요. 사르르~~꼭 참을 수 있을 만큼 아파요. 그 아픔이 수십초 지속되다가 4-5분 괜찮아지고 다시 사르르~~~잠깐 아팠다가 4-5분 뒤에 또 옅은 파도 물거품일듯이 진통이 오고 그래요. 근데 시간이 갈수록 강도가 세져요. 어디까지나 제 경우입니다~ 저는 11시 반부터 진통간격은 5-6분 내지 4-5분으로 일정하고 강도가 점점 세지더라구요. 집이 더 편하다고들 하던데 저는 계속 진통 겪는데 마음이 편칠 않는거에요.
원장님이 아직 집에서 출발할 때가 아니라고 하셨는데 그냥 조산원 가서 진통하고 싶다고 하고 갔어요. 조산원와서 원장님 보니까 안심이 좀 됐어요. 제가 원장님한테 많이 의지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안도감도 잠시, 초음파로 아기 상태부터 확인하는데 오~노! 아기 상태가 완전 멘붕... 발 한짝이 내려와 있어서 만약에 그대로 진행한다면 분만시 탯줄이 먼저 빠져 나올거라는 거예요!
머릿속이 하얘지더라구요. 배는 아프고 아기 상태는 위험하고 원장님도 난감하고 지켜보는 신랑도 애가 타고... 위험하다고 수술을 권하셨어요. 신랑도, 저 역시 갈팡질팡했지요.
하지만 자연출산으로 말똥이를 낳겠다는 제 생각이 거의 집착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그래! 한 번 해보자!라는 심정으로 그대로 밀고 나갔어요.
만일을 대비해 원장님께서 산소통까지 준비해두셨더라구요. 탯줄이 먼저 나올 경우 태아에게 산소공급이 원활치 않아 문제가 될 수 있대요. 그래서 되려 생각하기를 산소통도 있고 원장님이 노련하게 잘 받아주실거니까 걱정안한다~ 했죠.
그나마 다행이도 자궁경부는 빨리 열린편이더라구요. 4-5센티쯤에서 진전이 더딘듯 하다가 훅훅 열려 6센티, 8센티...
역아는 힘주면 안되고 천천히 아기가 알아서 내려오는대로 기다려가며 낳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발이 먼저 나오는게 느껴지는데 밑에서 뭐가 꼼지락꼼지락~했던게 아직도 생생해요.
원장님이 배를 만져보면서 아기 머리가 얼마나 내려왔나 수시로 체크하셨죠.
그렇게 천천히 천천히 아기가 내려오길 기다리면서 이상하게 마음은 굉장히 편안했어요. 아득하면서 온 몸이 다 열린 느낌이 들었어요. 간혹가다 들려오는 원장님 목소리, 아기 심장 잘뛰고 있다고 하시구요. 옆에서 신랑 목소리도 들리구요. 제가 가지고 온 음악 소리도 들리구요.
전제척으로 분만실 분위기가 정말 안락했죠. 마음이 너무나 편안했어요. 인원도 최소한으로, 원장님과 신랑 딱 둘만,
내 소중한 출산의 순간에 진심으로 함께해주는 사람들하고만 같이 아기를 맞이하는 거지요.
평화로운 분위기가 깨진건 아기 머리가 보일때였어요. 머리가 최대한으로 빨리 나와야 하는게 관건이었었거든요.
분만실이 소란스러워지고 저역시 그 순간에는 정말이지 있는 힘을 다해 아기 머리를 밀어냈어요. 악소리가 절로 나더군요...
오전 11시 23분에 드디어 말똥이 탄생. 진통에서 분만까지 총 12시간 걸렸어요. 신랑 증언으로는(!) 분만시간이 1시간 반정도 걸렸다더라구요. 전 한 20분 체감했었는데^^;;; 그러니 진통은 10시간 반쯤 겪은 셈인거죠.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아...원장님이 깡깡 울어대는 아기를 제 배 위에 딱~ 올려주실때의 그 감동을 잊지 못해요.
아기의 몸이 내 맨살에 닿는 그 느낌이란 정말, 이런 글로는 표현 못해요... 그러고는 정말 신기하게도 아기가 젖을 찾아 빨아요. 다시 한번 자연의 경이에 감동하는 순간이죠.
원장님께서 다행히 아기 상태 아주 좋다고 하시고 근육주사도 굳이 맞히지 않았어요.
내 아기...병원 가서 수술했으면 온갖 약물범벅되어 제 탄생의 순간조차 스스로 나오지 못하고
타의에 의해 엄마 배밖으로 꺼내어(!)졌겠죠.
아, 내 선택이 옳았구나...아기는 이렇게 낳는 게 정답이었구나...
왜 그런 생각이 들었겠어요...그것이 아기를 위한 최상의 출산법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아기뿐만이 아니라 엄마에게도 마찬가지구요. 출산이란 여자가 겪을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강렬한 경험이지 않을까요?
제가 겪어보니 강렬합니다... 오만가지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듯이 몰려오죠. 다 끝났다는 안도감. 아기를 만난 반가움과 환희와 동시에 완전히 내꺼였던 아기가 몸에서 떨어져나가서 시원섭섭하기도 하구요...
그리고 왠지 짜릿하고, 엄청난 일을 무사히 끝냈다는 뿌듯함까지.
원장님도 잠깐 자리를 비우시고 신랑도 부모님께 전화하러 나간 사이 아이를 가슴위에 올려놓은 채로 소리없이 울었어요. 눈물이 줄줄줄 흐르대요. 그 때 아기에게 정말 고맙다고 너무너무 고맙다고 애기해줬어요. 무사히 나와줘서 진짜 감사하다고. 함께 마음고생한 신랑도 넘넘 고맙고 무엇보다 원장선생님... 선생님 아니었으면 말똥이를 어떻게 낳았을까요.
제가 아무리 자연출산으로 아기를 낳겠다고 한들 원장님께서 받아주지 않았다면 아마 병원으로 가야 했을 거예요. 우리 아기가 평화롭고 안전하게 나올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신 원장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아기 시력보호를 위한 은은한 조명 아래 말똥이와 명상하며 듣던 음악이 들리는 공간에서 하는 아기와 나, 우리 둘이서만 하는 짧은 시간의 자축.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아기와 저만이 존재하죠. 그 누구라도 제아무리 아기아버지라도 끼어들 수가 없는 거예요. 저는 요즘도 육아때문에 지치면 그 때 그 순간을 회상해요. 그러면 팔목에 울긋울긋 튀어나온 핏줄도, 아기 똥대도, 익숙치 않은 내 몸의 변화 때문에 오는 스트레스도 다 만회가 돼요.
아무튼 그렇게 분만실에서 아기를 배위에 올린 채 한참을 젖을 물려요. 이유는 아기가 생후 한두시간 내에 바로 젖을 빨아야 머릿 속에 각인이 되기 때문이죠. 뭐 다 아시겠지만요^^;;;
분만실에서 몸을 추스리고 신랑에게 부축을 받아 위층 조리원으로 바로 올라갔어요. 아기는 원장님께서 직접 안고요.
조산원에서 출산한 산모는 조리원으로 바로 올라가 2박 3일동안 몸을 조리한 뒤 퇴실을 하면 된대요. 물론 그 기간동안 신생아 케어도 다 해주구요. 산모의 몸을 위한 배려가 느껴졌어요.
아기 낳고 나면요...겨우 걸어요. 그것도 신랑의 부축을 받고서요. 그렇지 않고서는 사지가 후들거려서 몸을 가눌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산모를 바로 집으로 보내지 않는 것 같더군요.
저는 2박 3일 지내고 일주일 더 있다가 퇴실했는데요, 돌이켜보니 아마 한달정도 더 있었더라면 퇴실후 아기 보기가 더 수월했을 것 같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2주차부터는 그야말로 고생문이 활짝 열리거든요.
내 몸을 추스리면서 신생아를 케어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아요. 옆에서 고생하시는 친정엄마한테도 미안하고요... 엄마가 정말 몇사람 몫을 다 하셔야 해요. 조리원에서는 영양 설계해서 나온 식단에 밤 간식까지 꼬박꼬박 챙겨 먹을 수 있었는데 집에 와보니 웬걸, 삼시 세끼 챙겨먹기도 빠듯하더라구요. 얌전하기만 하던 아기도 급성장기를 맞아 엄청 힘들어하구요...저는 조리원 퇴실하고 나서도 틈만나면 원장님께 전화해대느라 바빴어요. 바쁘신 와중에도 매번 차근차근 잘 설명해주시는 원장님께 요 지문을 통해서라도 감사드린다고 말하고 싶어요.
여자에게 그리고 아기에게 출산은 일생일대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두고두고 회상하며 가슴뭉클할 수 있는 추억거리로 남아야 해요. 저는 제 첫 출산의 기억을 그렇게 평화스럽게 간직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 같아 정말 뿌듯하고 기뻐요.
아기와 엄마가 합심하여 주도적으로 이루어지는 출산이야말로 진정한 '아이 낳는 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출산은 그 누구가 대신 해줄 수도 없는 아기와 엄마만이 해나가는 일이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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